올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두 가지였다. "왜 퇴사했어요?" 그리고 "퇴사하니깐 좋아?"

더 열심히, 오래 일하고 싶어서 퇴사했다. 물론 퇴사 당시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. 행동에 대한 이유는 가변적이고 현재를 설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.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일에 학을 뗄 것 같았다.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게 더 열심히, 오래 일하는 길이었다.

처음부터 목표는 스타트업밖에 없었다. 그렇게 큰 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, 패션에서 모빌리티로, 경영기획에서 운영으로 회사, 산업, 직무 모든 걸 바꿨다.

스타트업으로 옮기고 몇주간 인간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사는 미련한 동물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. 팀에서 경력도 나이도 가장 많은데 막상 이 일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. 쪽팔리기 싫어서 꾸역꾸역 출근해 일을 했다.

가장 큰 자극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었다. 사회 초년생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어리지만 훌륭한 친구들이 많았다. 초반엔 그들과 비교해가며 한탄했지만 지금은 힘에 부치는 일, 처음 하는 일을 접할 때면 **'내 능력껏 하자.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. 그 외는 팀원들에게 도움을 얻자'**고 생각한다. 그리고 **'내가 팀에 기여하는 바를 명확히 하자'**고 다짐한다.

매달 한 번씩 매니저와 1:1 리뷰를 하는데 매니저는 경력답게 잘해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워 했다. 사실 이 말이 편하지 않았다. 여전히 부족하고 배운게 없는 것 같은데 인정부터 받으니 이상했다. 돌이켜보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진짜 이유는 이전 회사에서는 한 번도 진심어린 인정, 즉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였다.

이 곳에 온 이후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. 일을 하게 만드는 동력은 거창함에서 오지 않는다. 서로를 인정하고 감사해하는 작은 마음. 그리고 그 기반은 겸손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된다.

이곳에서 얻은 또 다른 것은 리더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. 입사 5개월 차에 회사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. 공교롭게도 그 실무자는 나였다. 나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상 모두가 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. 일 자체가 나쁜 것을 떠나 스스로를 설득시킬 시간과 자기 확신이 부족했다. 퇴사를 각오하고 매니저에게 시간을 청했다.

그는 함께 갈 식당을 알아왔다.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의 정신 상태였지만, 그가 그곳에 가자고 한 것은 기억난다.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.

"더 이상 못하겠어요. 맞는건지 확신이 없어요." 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. "당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해도 괜찮아요.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책임과 권한 또한 당신에게 있으니 한 번 바꿔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?"

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상대의 입에서 나올 때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느낌이 든다. 그 순간, 그전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의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. 일의 의미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. 이런 경험들이 쌓여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,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었다.

좋은 리더란 이런게 아닐까. 필요한 순간 권위를 내려놓고 상대를 향해 한 발짝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것. 그 말을 들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.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.

지난 6개월간 참 생각없이 살았다고 자책했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위안이 된다. '답은 고민에서 나오고,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'는 말을 잊지 말자고. '더 깊이 고민하고, 사람들로부터 성장하자'고 다짐해본다.